여기다가 이별타로 봤던거 넣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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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로 봤던거 여기 넣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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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의 어느 날

심야를 알리는 검푸른 색이 하늘에 퍼진다. 주위를 둘러보면 코앞에 있는 제 몸 하나도 볼 수 없을 정도로 어두운색이었다. 그런 암흑 속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우자 문틈 새로 불어온 한기가 몸을 두드린다. 누가 봐도 여실한 새벽의 바람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찰스가 천천히 시야를 돌려 시계를 바라보면, 초침은 이제야 오전 5시를 향해 가고 있는 게 보였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있어 이 시간은 하루를 시작하기에는 너무나도 이른 시간일 터이나, 누군가에게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하루가 시작될 시간이었기에 그는 가볍게 기지개를 켜고는 침대 밖으로 몸을 빼냈다.

따르르릉.

그가 몸을 빼냄과 동시에 알람 시계가 제 존재감을 알리고 싶기라도 한 듯, 요란히 울린다. 긴 팔을 뻗어 평소처럼 시계를 진정시킨 찰스는, 보드에 붙여놓은 오늘의 일정을 확인한다.

6시, 샵 방문.
8시, N사 아침 토크쇼.
11시, 블루 프레임. Z사 잡지 인터뷰.
13시, 라 프로메사. 식사.
14시, 히어로 촬영장 이동.

6시까지 샵에 방문하려면 40분 가량 차로 이동을 해야 했기에, 슬슬 자고있을 옆집의 애인을 깨워야 했다. 평소였다면 알아서 일어나 있을 시간이지만, 오늘은 늦게까지 이어진 촬영으로 새벽이 되어서야 귀가했기에 아직 자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걸 생각하면 좀 더 자게 두고 싶은 생각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매니저의 일이라는 건 이런 것 아니겠나. 특히 오늘 나갈 아침 토크쇼는 그가 출연에 상당히 심혈을 기울인 프로그램이었으니, 가능한 철저한 모습을 보이고 싶어할 터였다. 배우 일라이 하우저는 도무지 남에게 빈틈을 보이는 걸 좋아하지 않는 인물이었으니까. 뭐, 이런 걸 말한다면 그가 그러지 않은 날이 있었냐는 질문이 돌아올지도 모르지만, 마음이라는 게 항상 똑같은 수평선을 유지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찰스는 작은 열쇠 하나를 챙겨 문을 열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그 열쇠를 제 바로 옆집에 꽂는다. 저항 없이 돌아간 문은 고요하게 열렸다. 그는 익숙하다는 듯, 열린 문을 알고 집 안을 향해 발을 딛는다. 빛이라고는 들어오지 않는 새카만 암막 커튼이 쳐진 거실, 최소한의 생활감만 존재하는 소파와 같은 가구들. 그 사이를 거닐다 보면, 안쪽에 있는 침실이 보인다. 문을 열고 그 안을 들여다보면, 거대한 인기척을 느낀 듯 잠시 험하게 인상을 찌푸리는 밀색 머리카락의 청년이 있다.

일라이 칼렙 하우저.
찰스 치코 바넷의 애인, 고용인, 호그와트 동창, 스타. 그 무엇으로 불러도 맞다. 하나는 본인이 무척 싫어하는 호칭이겠지만. 찰스는 여태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일라이에게 다가가, 손으로 접힌 이마를 문지르며 머리 밭에 걸터앉는다.

“이제 일어나야지, 일라이.”

하지만 여전히 인상을 쓸 뿐, 하늘빛 눈이 보이지는 않는다. 어쩔 수 없나? 찰스는 그리 생각하며, 아예 그의 팔 아래로 제 팔을 넣어 그를 안았다. 그러자 드디어 색다른 반응이 돌아왔다. 일라이의 눈이 몇 번 깜박임과 동시에 이지가 돌아오고, 어둠에 잠겨있던 하늘색 눈동자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신경질적으로 찌푸려져 있던 인상은 찰스를 발견하고는 평온하게 돌아온다.

“놀라지 않네?”
“이런 존재감을 가지고, 날 이렇게 대할 게 너 빼고 누가 있다고.”
“그런가? 꽤 있을 것 같은데.”
“그래. 너뿐이야.”

일라이가 침대를 더듬어 무언가를 찾는다. 그걸 본 찰스는 그에게 현재 시각은 5시 5분 정도 되었다며 속삭이듯 말하고는, 그를 바닥에 내려두었다. 고개를 끄덕인 일라이는 내려앉은 제 머리를 쓸어올리며 욕실을 향한다. 그가 씻고 나온다면 알아서 차에 내려올 것을 알았던 찰스는, 침을 챙겨 먼저 집을 나섰다.

그리고 자신의 차를 뒤적이고 있는 파파라치를 만났다.

“젠장. 이 차도 안은 전혀 안 보이는군.”

주문 제작을 넣은 마법사의 자동차였으니, 고작 저런 잡놈에게 털릴 리 없다. 그걸 알고 있던 찰스는 관람하듯 파파라치의 행동을 살폈다. 차 문을 여는 데 실패한 파파라치는 안 대신 바깥을 샅샅이 뜯어보기로 한 듯 무릎을 꿇은 채 바닥까지 파내고 있었다. 그러면서 배우의 수입이, 과소비, 국산 차가 아닌 외제차……그리 여러 단어를 중얼거렸는데, 그제야 그는 파파라치가 저 차를 일라이의 차로 착각했음을 깨달았다. 뭐, 일라이의 연인이자 매니저의 차였으니 아예 틀리냐고 물으면 그건 아니었지만.

“특종이 필요하다고, 대배우씨. 협조 좀 해주라?”
“어떤 특종을?”
“그야 당연히 일라이 하우저의 사생……!!!”

머글들이란 왜 대체 남의 사생활을 궁금해하는 걸까? 의문이 든 찰스는 슬슬 저 파파라치에게 개입하기로 했다. 이제 곧 파파라치를, 아마도 호그와트보다 더 싫어하는 제 애인이 이곳에 내려올 예정이었으니 그 전에 치우자고 생각한 탓이었다. 찰스의 물음에 본능적으로 대답하려던 파파라치는, 드디어 이상함을 깨달았는지 옆에 앉아있던 그를 보며 비명에 가까운 악을 질렀다.

“너. 너너. 너! 젠장. 젠장. 오늘이 일라이 하우저의 거인 경호원이 나오는 날이었나?”
“어라. 딱히 거인이나 경호원은 아닌데 말이지.”
“그럼 대체 뭔데!”
“일라이의 애인이자 매니저? 그게 사실이지.”

평소처럼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파파라치에게 대답하니, 오히려 상대는 못 볼 것이라도 본 듯이 펄쩍 뛰었다. 일라이 하우저가 왜 너랑 사귀냐, 지인 중에 이렇게 키 큰 사람이 있다는 얘기는 못 들었다. 이렇게 키가 큰 매니저가 어디 있냐. 다 거짓말이지? 그와 일라이를 뭐라고 여기기에 저런 물음을 던지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찰스는 굳이 저 머글의 호기심을 해결해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어차피 오늘 이후면 안 볼 사람이 아닌가. 다만 머글이기에 마법을 써 한 번에 멀리 쫓아내는 수단을 쓰지 못해 조금 번거롭다고 느꼈다. 그래도 그의 체격 자체는 마법 사회뿐만 아닌 머글 사회에서도 상당히 유용한 수단이었으니……, 찰스가 파파라치를 향해 가볍게 한 걸음을 디뎠다.

“두고 보자!”

그러자 파파라치는 찰스에게 거대한 압박이라도 느낀 듯, 누구보다도 빠르게 자리에서 도망쳤다. 어차피 잠시 가까워진 그 찰나에 카메라 안에 담긴 내용은 무언 마법으로 지워버렸기에, 굳이 쫓아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찰스는 그대로 차에 올랐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아무것도 모르는 일라이가 내려온다. 그는 평온한 표정의 찰스를 보고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물었다.

“오늘, 아무도 없었어?”
“뭐가?”
“쓰레기들. 슬슬 붙을 때가 됐는데.”
“잘 모르겠네.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있겠지?”

의아해하는 그를 태우고, 찰스는 액셀을 밟았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6시, 샵 도착.
7시 40분, N사 도착. 토크쇼 진행자와 인사를 나눈다.
8시, 녹화 시작.

“네. 오늘의 토크쇼 초대자는 할리우드의 어린 대스타. 일라이 하우저입니다. 모두 아시죠? 설마 그의 이름을 모르는 분은 없으리라 믿습니다.”
“할리우드를 안다면, 저를 모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녹화 시작과 동시에 그가 보고 있던 일라이는, 배우 일라이 하우저가 되었다. 오롯이 작품만을 탐하고, 누구보다 뛰어난 배우가 되고자 하는 열망이 있는. 그에게는 미미한, 사람을 불태울 만큼의 어떤 거대한 열망이 있는 사람이. 찰스는 앉을 것이라도 가져다주냐는 스탭들의 제안을 거절하고서는 그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 시선을 분명 일라이도 느꼈을 것이나, 부러 이쪽을 쳐다보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토크쇼를 진행하던 일라이가 가볍게 웃는다. 찰스는 어쩐지 그 웃음이 평소와 다르다고 여겼다.
불편한 질문이 나오면 사정없이 얼굴을 구긴다. 그러나 대답은 솔직하다. 이건 그가 아는 일라이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그가 대답하는 것들은 찰스가 이미 아는 것도, 모르는 것도 있어서 나름대로 흥미로운 시간이 지나갔다. 다음 작품에 대한 것, 도전해보고 싶은 역할, 좋아하는 영화, 작품을 고르는 기준, 그리고 어머니의 그늘. 일라이 하우저에게 어머니 일리아나 하우저에 대한 이야기는 일종의 자상이다. 그러나 이미 수많은 자에게 질문을 받아온 만큼, 그를 모욕하는 것만 아니라면 일라이는 어느 정도 이야기를 넘길 줄 알게 되었다. 그게 묘하게 7학년 시절의 그와 교차되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 찰스는 가볍게 고개를 기울였다.

“그럼 마지막 질문입니다.”
“좋습니다. 뭐죠?”
“일라이 하우저씨는 할리우드의 대스타로 성장한 만큼, 그 연애사도 많은 사람의 관심사인데요. 혹시 현재 사귀는 사람이 있나요?”

그 말에 일라이의 시선이, 찰스를 향한다. 계속 일라이를 쳐다보고 있었던 찰스는 네 뜻대로 하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자 일라이는…….

“숨길 이유는 없겠죠. 네. 현재 매니저와 사귀고 있습니다.”

그냥 질러버렸다. 일라이의 폭탄 발언에 스튜디오에서 짧은 환호성이 터진다. 몇몇 스탭들은 찰스에게 다가가 본인의 이야기냐고 묻기도 했다. 질문을 들은 찰스는 그저 웃으며, 제 약지에 걸린 반지를 두들겼다. 일라이 하우저의 손가락에 끼인 반지와 똑같은 반지였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대답이었기에, 그들은 연신 부럽다는 말을 할 뿐이었다.

그렇게 토크쇼가 마무리되었다. 바깥에서 본 일라이는 여전히 토크쇼에서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으나……찰스는 그에게 담배 한 개비를 건넸다.

“곧 잡지 인터뷰인데.”
“밀착해서 하는 건 아니잖아?”

마침 피우고 싶었던 것인지, 그리 대답하자 일라이는 반박하지 않고 불을 피웠다. 연기가 하늘을 타고 조금씩 올라 간다.

“올해도 금연은 못 하겠네.”
“일하다 보면 피우고 싶어지니까. 넌 피우고 싶던 적 없나?”
“글쎄. 딱히? 네가 피우는 걸 보면 조금 궁금하기도 한데, 또 피우고 싶진 않아.”
“맛이라도 묘사해줘?”
“아니.”
“그럼 궁금증을 해결한 방법은 없겠군.”

일라이가 사람이 없는 반대편으로 연기를 내뿜어내고는, 근처에 있던 돌에 담배를 지졌다. 그리고는 슬슬 이동하자는 듯, 두 사람이 타고 온 차를 향해 발을 틀었다.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던 찰스는 잠시 생각하다, 꼭 그런 것만은 아니지. 그리 속삭이듯 말하며 일라이의 어깨를 잡고는 고개를 내렸다.

삭막한 입술이 맞닿는다.
매캐한 향이, 입을 타고 흘러들었다.
조금은 놀란 듯 움찔거리는 상대의 몸을, 그대로 고정하는 게 그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가 눈을 뜨면, 허공에서 두 개의 시선이 마주친다. 숨을 빼앗긴 일라이가 찰스를 밀어내면, 이번에는 순순히 밀렸다. 흐트러진 숨을 몰아쉰 일라이는 그에게 물었다.

“...그래서 맛이 어떤데.”

평소처럼 무엇도 보이지 않는 눈으로 돌아온 찰스가 대답했다.

“음. 여전히 왜 피는지는 잘 모르겠네.”

그런 그를 얄밉다는 듯, 일라이는 주먹으로 가볍게 쳤다.